섬 여행은 이상하게도 도착하는 순간부터 속도가 느려집니다. 비행기나 배에서 내리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공기에서 소금기와 풀 냄새가 묻어 나죠. 이번 글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 곳—제주도, 울릉도, 남해(남해·거제·통영 권역)—를 한 번에 훑어보며, 실제로 다녀온 사람처럼 느껴지는 동선과 팁을 정리했습니다. 광고성 문구 대신, 여행 중 “이거 알아서 다행이다” 싶은 정보에 집중했습니다. 계절과 이동수단, 숙소 유형과 맛집 선택법, 날씨 변수가 많은 섬 특성까지 한 번에 챙겨보세요.
1) 제주도: 서쪽 바람을 타고 도는 감성 로드트립
제주를 한 번에 다 보겠다는 욕심은 금방 피로로 돌아옵니다. 추천은 서쪽 라인 중심 2박 3일 동선입니다. 첫날은 공항에서 곧장 애월–한림 방향으로 빠져 카페와 해안도로를 훑고, 오후에는 협재·금능의 얕은 사파이어빛 바다에서 속도를 줄여보세요. 바람이 센 날엔 모래가 날리니, 파라솔 대신 차 안에서 바다를 보는 ‘드라이브 피크닉’도 좋습니다. 둘째 날은 한라산 자락을 끼고 오설록–곶자왈–도순으로 이동하며 숲길과 차밭의 초록을 번갈아 마주합니다. 곶자왈은 비 온 다음 날이 특히 매력적인데, 숲 내음이 진하고 습윤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이 달라요. 셋째 날 아침엔 수월봉에서 수평선 일출을 노려보고, 귀경 전 용두암이나 삼무해변에서 마지막 바람을 챙기면 리듬이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먹고 묵는 법은 단순하게 가세요. 번화가 줄 서는 맛집 대신, 현지인 점심 식당과 콘도형 숙소를 조합합니다. 해산물은 날씨와 어획에 따라 편차가 크니 “오늘 뭐가 좋아요?”라고 묻는 게 정답이고, 돼지고기는 과하게 유명한 곳보다 동네 숯불집이 실패 확률이 낮습니다. 렌터카는 하이브리드 소형이면 충분합니다. 해안도로는 속도가 느리고, 주차는 의외로 타이트하니 차 크기가 작은 게 유리해요. 마지막으로 바람과 비는 제주 일상입니다. 우비 한 벌, 방수 커버, 여분 양말만 챙겨도 일정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실내 전시장, 비자림 숲 산책, 수목원 야시장으로 플랜B를 돌리고, 맑으면 해변과 오름(사려니·군산·금오름)으로 플랜A를 복귀하면 됩니다.
2) 울릉도: 느림의 속도로 섬을 한 바퀴, 바람·파도·절벽의 원형
울릉도는 “가는 길부터 여행”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곳입니다. 배 시간과 파고 상태에 따라 출발·귀항이 흔들릴 수 있어 여유 있는 일정(최소 2박 3일)이 필수예요. 도착하면 바로 욕심을 버리고 섬 일주 도로를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돕니다. 도동–저동–남양–현포–천부로 이어지는 해안선은 구간마다 표정이 달라, 차창을 액자처럼 쓰게 됩니다. 날씨가 허락하면 내수전–성인봉 능선 트레킹을 한 코스만 넣어 보세요. 숲은 깊고, 바다는 멀리서 푸른 띠로 감깁니다. 걷는 동안 휴대폰은 자주 잊히고, 발걸음에 집중하는 시간 자체가 울릉도의 보상입니다.
식사와 숙소는 ‘신선한 재료’ 기준으로 고르면 실패가 없습니다. 홍합밥·오징어내장탕·울릉 약초 비빔밥처럼 섬 고유의 맛을 한 끼씩 배치하고, 저녁엔 포구 근처 횟집에서 단촐하게 마무리하세요. 숙소는 포구 접근성이 좋은 게스트하우스 혹은 작은 호텔이 이동 효율이 좋습니다. 교통은 렌터카 또는 현지 버스+택시 혼합이 현실적입니다. 길이 좁고 굴곡이 많아 초행 운전자는 무리하지 않는 게 안전해요. 날씨 변수에 대비해 독도 연장 일정은 항상 플랜B로 두고, 출항 가능 여부를 전날 밤 다시 확인하세요. 파도가 높아 배가 묶이는 날엔 봉래폭포 산책, 천부 해중전망대와 같은 실내·근거리 코스로 리듬을 바꾸면, 일정이 틀어져도 기분은 틀어지지 않습니다.
3) 남해(남해·거제·통영): 다리로 이어지는 섬, 아일랜드 호핑의 즐거움
남해권의 매력은 ‘배 타지 않아도 섬 느낌이 나는’ 점입니다. 남해대교와 거제대교를 건너며 바다가 차창 가득 펼쳐지고, 일정 조합이 자유로워 2박 3일 아일랜드 호핑에 딱 맞습니다. 첫날은 남해 보리암–독일마을–양모리학교로 이어지는 언덕 라인을 타면서 남해의 따스한 색감을 모읍니다. 노을은 상주은모래해변이 좋고, 바람이 잔 날엔 얕은 파도에 발만 담가도 하루가 정리돼요. 둘째 날은 거제로 이동해 바람의 언덕–신선대–해금강 전망을 잇고, 시간이 허락하면 외도 식물원을 더합니다. 드라이브 동선이 길기 때문에 중간중간 포구 카페나 작은 식당에서 쉬어가는 리듬이 중요합니다.
셋째 날은 통영에서 동피랑 벽화마을–미륵산 케이블카–루지까지 가볍게 즐기면 피로 누적이 덜합니다. 미식은 통영의 충무김밥, 남해의 멸치쌈밥, 거제의 대구탕·해물요리처럼 간판 메뉴를 한 끼씩만 묶고, 나머지는 포구에서 그날 들어온 회로 채우면 균형이 좋아요. 숙소는 이동 동선을 기준으로 남해 1박 + 거제 또는 통영 1박을 추천합니다. 차가 있다면 소형 세단이 골목 주차에 유리하고, 대중교통 이용 시에는 시외버스+택시를 섞는 편이 시간 대비 효율이 높습니다. 마지막 팁 하나, 남해권 바다는 햇빛 반사가 강하니 편광 선글라스·얇은 바람막이·자외선 차단제를 기본 세트로 챙기세요. 사진 색감이 한 톤 올라가고, 오후 피로가 확 줄어듭니다.
마무리: 섬 여행을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체크리스트
- 계절 전략: 봄·가을은 걷기와 드라이브, 여름은 물놀이·카페, 겨울은 전망과 미식 중심으로 구성하면 피로가 덜합니다.
- 플랜 A/B: 섬은 날씨가 변덕스럽습니다. 야외(오름·전망대·해변)와 실내(전시관·카페·시장)를 한 세트로 묶어, 상황에 따라 즉시 교체하세요.
- 짐 최소화: 우비, 여분 양말, 보조배터리, 선크림만 챙겨도 절반은 해결됩니다. 짐이 가벼우면 일정이 유연해집니다.
- 동선 단순화: 하루에 핵심 스폿 3곳만. 여백이 사진과 기억의 품질을 결정합니다.
- 현지 질문: “오늘 파도 어때요?”, “지금 제일 신선한 게 뭐예요?”—현지의 한 마디가 가이드북 열 페이지보다 정확합니다.
섬 여행의 본질은 속도를 낮추는 데 있습니다. 바람이 세고, 비가 와도 여행은 망하지 않습니다. 준비한 대로 움직이되, 현지의 리듬을 받아들이세요. 그러면 제주에선 초록이 더 진하게 보이고, 울릉도에선 파도 소리가 더 깊게 들리고, 남해에선 노을이 더 오래 머뭅니다. 다음 여행이 또 기다려지는 이유가 그 진득한 리듬 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