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보는 여행도 좋지만, 그 나라의 옷을 입어보는 순간만큼은 기억이 오래 남는다. 옷은 천과 바느질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안에는 계절과 기후, 삶의 속도와 미학의 기준, 공동체가 쌓아 올린 이야기가 켜켜이 배어 있다. 낯선 도시에서 전통 의상을 차려입고 골목을 걸으면 시선이 천천히, 호흡이 길게 변한다. 사진 몇 장을 남기는 이벤트를 넘어, 그들의 시간을 잠시 빌려 사는 작은 체험이 된다.
한국과 일본에서 느낀 전통 의상의 매력
한국에서 한복을 처음 입었을 때 나는 등과 어깨가 저절로 펴지는 걸 느꼈다. 저고리의 여민선이 가슴 앞에서 가지런히 만나고, 치마의 둥근 선이 발목 주변을 조용히 감싸면 몸짓이 자연스레 느려진다. 경복궁 돌바닥을 밟을 때마다 신발에 실린 작은 소리가 귓가에 남고, 낮은 처마가 만든 그늘이 한복의 색을 한 톤 더 깊게 물들인다. 사진을 찍는 건 덤에 가깝다. 바람이 스치면 치마 폭이 살짝 들리고, 그 움직임이 온전히 풍경의 일부가 된다. 한복은 화려함보다는 여백을 남기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색을 억지로 채우지 않고, 선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이 감각은 일본 교토에서 기모노를 입었을 때와 또 다른 결을 만들었다. 기모노는 준비 과정부터 의식 같다. 속옷을 정리하고, 이너와 겉옷을 차례로 맞추고, 오비를 단단히 매듭지을 때 호흡이 깊어진다. 거울 속 실루엣은 어제의 나와 다른 사람이지만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니넨자카의 돌계단을 오를 때 목덜미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소매 끝으로 손가락을 모아 걷게 되는 동작, 골목 모퉁이마다 달라지는 빛, 대문 앞 대나무 발에서 번지는 그림자까지 모두가 기모노의 일부가 된다. 여름 축제에서는 유카타를 입었다. 더 가볍고 간단한 옷인데도 종이등 아래에서 보이는 색감은 의외로 진해서, 밤하늘의 불꽃과 함께 화면을 꽉 채웠다. 축제가 끝난 뒤 땀이 식을 때쯤, 유카타 깃에서 올라오던 약한 향과 한밤의 습기가 지금도 기억난다. 두 나라의 전통 의상은 방향이 다르다. 한복은 비워서 보이게 하고, 기모노는 쌓아 억제한다. 한복이 바람과 곡선으로, 기모노가 결과 매듭으로 미학을 만든다. 서로 다른 길이지만, 몸을 단정하게 만드는 힘은 닮아 있었다.
인도와 멕시코에서 만난 다채로운 전통 의상
인도에서 사리를 처음 만졌을 때 가장 놀랐던 건 ‘봉제된 옷’이 아니라 ‘감아 입는 질서’라는 점이었다. 길게 이어진 천을 허리에서 시작해 여러 번 두르고, 주름을 겹겹이 모아 핀으로 고정하고, 어깨로 흘려 내리는 마지막 드레이프를 정리하면 비로소 한 사람의 하루가 완성된다. 색은 주저함이 없다. 금사와 비즈, 거울 장식까지 햇빛을 번쩍 집어 올린다. 시장 골목을 걸으면 상인들의 목소리와 향신료 냄새 사이로 사리의 색이 파도처럼 진폭을 만든다. 현지 여성들은 지나가다 미소로 말을 건넨다. “이 색이 당신 피부에 잘 맞는다”고, “주름을 한 번 더 안으로 넣어야 더 단정하다”고. 그 순간 나는 관람객에서 참여자로, 손님에서 이웃으로 한 걸음 옮겨지는 느낌을 받는다. 남성들의 쿠르타는 또 다르다. 통기성 좋은 면이나 리넨이 피부를 시원하게 식혀 주고, 헐거운 실루엣이 더위를 이기는 리듬을 만든다. 옷이 기후를 이기는 도구라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게 된다. 멕시코에서는 축제 전날 대여한 전통 의상을 입었다. 여성의 드레스는 풍성한 주름과 원색의 자수가 춤을 전제로 만들어진 듯했고, 남성 복장은 카우보이 모자와 짧은 재킷, 장식 단추가 경쾌한 리듬을 새겼다. 광장에 마리아치가 연주를 시작하면 치맛단이 음악에 맞춰 부풀었다 줄었다 하고, 발끝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람들을 원으로 모았다. 그 밤 내내 나는 낯선 언어도, 다른 리듬도 문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같은 의상을 입는다는 건 같은 편이 되는 일이다. 누군가가 내 어깨에 팔을 얹고, 또 다른 누군가가 치맛단을 잡아 들어 올려 주며 박자를 맞춰 준다. 의상은 축제의 입장권이자, 공동체의 환대가 통과하는 매개였다. 새벽 무렵 모자 챙에 맺힌 이슬을 털어 내며 광장을 떠날 때, 몸에는 피로가 남았지만 마음에는 이상할 만큼의 평온이 있었다. ‘함께’의 감각은 그렇게 오래, 깊게 남았다.
전통 의상이 가르쳐 준 문화의 깊이
전통 의상을 입을 때마다 깨닫는다. 옷은 그 사회의 시간표를 입힌 지도라는 것을. 한복의 여백은 속도를 늦추고, 기모노의 매듭은 몸의 중심을 붙잡아 준다. 사리의 주름은 태양 아래서도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지혜이고, 멕시코 드레스의 색은 축제를 일상으로 불러오는 주문 같다. 천의 두께는 계절을, 문양은 신앙과 상징을, 길이는 신분과 역할을 암시한다. 그래서 전통 의상은 과거의 표본이 아니라 현재형의 생활 기술이다. 여행자로서 그 옷을 입는 일은 문화에 대한 환대를 청하는 제스처이자, 내 편견을 잠깐 내려놓는 시도다. 현지인과의 대화도 더 쉬워진다. 언어가 모자라면 몸짓이 채운다. “이 매무새가 맞나요?”라는 질문 하나로 스몰토크가 시작되고, 주름 하나, 매듭 하나를 함께 고치다 보면 익명의 도시에서 하루치의 이웃이 생긴다. 사진은 덤이다. 중요한 건 프레임 밖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교류, 내 몸의 감각이 바뀌는 순간들이다. 그래서 다음 여행에서도 나는 또 그 옷을 찾을 것이다. 대여소의 거울 앞에서 숨을 고르고, 낯선 실루엣을 받아들이고, 그 도시의 보폭으로 하루를 조정하는 일. 옷을 통해 배우는 문화는 책에서 읽을 때와 다르다. 몸으로 이해한 지식은 쉽게 희미해지지 않는다. 여행은 풍경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리듬을 배우는 과정이고, 전통 의상은 그 과정으로 들어가는 가장 부드러운 문이다. 언젠가 또 다른 나라에서 또 다른 옷을 입게 된다면, 나는 이번에도 같은 마음을 꺼내 들 것이다. 나를 조금 덜 주장하고, 그들의 시간에 맞춰 호흡하면서, 하루만큼의 삶을 정직하게 배워 보겠다고.